삶 & 생각

나의 페르소나에 대한 단상

오하라74 2011. 9. 19. 03:00

" 언제쯤이면 우리는 페르소나를 벗고

  자신의 맨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지만 맨얼굴이라고 믿었던 것도

  사실 또 하나의 페르소나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도대체 우리의 맨얼굴은 얼마나 많은

  페르소나를 벗겨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일까? "

 

 

                         -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중에서 -

 

 

========================================================

 

 

난 좀 처럼 소설을 읽지 않는다.

소설을 쓴다고 허우적 거리는 사람치고는 말이다.

하지만 인문학 서적을 읽는 것에는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오늘, 괜찮은 인문학 서적 한권을 발견했다.

늘 내가 내 스스로에게 던졌던 많은 질문과 호기심 어린 궁금증들...

이 책은 그것에 대한 보편적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내가 자주 다루었던 주제인 '페르소나'나

혹은 '기억' '선택' '자유' '사랑' 등등에 관련된 철학적 접근은  

내가 사고하고 있고, 그것을 쓰는 행위를 통해 표출하는 까닭을

가장 근사하게 해석하고 있기에 더욱 반가웠던 것 같다.

 

독서중,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았던 주제는 바로 "페르소나" 였다.

난 늘 가식과 가면을 쓴 이들에 대한 거부감으로

그것을 비판하며 생얼인 내 자신을 옹호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묻는다.

 

"과연 맨 얼굴이라고 믿었던 그 생얼도

 사실 또 하나의 페르소나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라고.

 

이 대목에서 난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나의 페르소나에 대해 얼마나 객관적이었던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곰곰히 나를 되돌아 보면서 말이다.

물론 타인의 페르소나를 비판하는 가운데에서도

난 가끔 나의 페르소나를 발견하고 그것에 실망하기도,

혹은 내 자신을 부끄러워 하거나 책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가면을 벗긴 생얼조차 또 하나의 페르소나 일 것이라는 설정에

내가 크게 반박할 수 없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글이라는 생각의 정화 과정 속에서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말들이 은유나 비유 혹은 

가식적으로 포장된 현학적 표현으로

대부분 유화되거나 희석되었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 혼자 쓰고, 혼자 보는 일기가 아닌 이상

조금은 대중적이거나 일반적인 말들로 바꿔야 하는 과정이다 보니

맘속 감정들을 생각 그대로 직설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조금은 과격한 것도 있고 때때로 민망한 것도 있고...

사실... 감추고 싶은 내 안의 생각들이 훨씬 더 많았음을 인정한다.

그것들이 보편적인 일반 생각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생각이 내 자유이듯이 내 생각을 거부할 이들의 자유 또한

존재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붙들었던 것이다.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들...

표현하고 싶었지만 차마 표현하지 못한 생각들...

리얼하게 까발리고 싶었지만 조용히 묻어두었던 감정들...

이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난 생얼이 아니었던 게다.

 

그렇다고 앞으로 나의 진정한 생얼을 위해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쓰고 싶은 글 다 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있어서는 난 여전히 "NO" 다.

'용기가 없어서'가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날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가 필요하기에...ㅠㅠ;;

겁쟁이라 놀리고 비판해도 어쩔 수 없다.

난 인간이고...

타인에게 상처받고 아파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안다.

 

하지만 오늘 이후로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나의 페르소다나가 다른 이들의 페르소나 보다

훨씬 덜 이기적이라거나 혹은 덜 두꺼울 것이라는

나만의 주관적인 편견에서는 벗어날 생각이다.

나의 순수와 생얼을 미화할 생각도 없다.

페르소나는 어디까지나 페르소나다. 그것에는 경중이 없다.

그저... 다 똑같은 가식인 것.

 

그래도 가식쟁이 겁쟁이가 다른 가식쟁이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적어도 우리...생각이라는 것은 좀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아프면 남도 아프다는 것 쯤은 잊고 살지말고

나의 따뜻한 인사 한마디가 다른 이들에게

삶의 희망과 원동력이 될 수 있음도 기억하자.

가식일땐 가식이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