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불을 가진 자의 세상은...
여성의 권세는 치맛바람이고
여성의 정열은 드셈이 되고
여성의 비판은 건방짐이며
여성의 노여움은 발끈함이고
여성의 지적 욕구는 허영심인 세상에서...
난 <불의검>의 카라가 되기 보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가 되기로 했다...
물론 두 여자의 각기 다른 극단적 삶은
보여지는 외면과는 달리 무척 외롭고 고독하다...
생존을 위한 두 사람의 노력이 애처롭다 못해
눈물겹기까지 하니까..
하지만 개중 내가 오하라의 캐릭터를 선택한 건
자본주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이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뿌리깊은 봉건주의의 잔재는 남아있고
여자를 단순히 남자의 소유물 내지는 종족번식의 도구이며
남자들의 성실한 비서쯤으로 생각하는 이들 속에서
(결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는 남성들일 지라도
그 내면에 자리잡은 사회적 교육으로서의 남성성이 있는 한
그 본성은 살아있을 것이므로...)
그들을 누르고 대립하며 남자의 권위주의를 답습하는
카라보다는 비록 전략적 치밀함으로서의
교활한 여우의 미소와 눈물을 가졌지만
남자들과 대립하기보다는 그 심리를 잘 간파해
조화롭게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오하라의 모습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기에...
카라의 모습을 선택하던 오하라의 모습을 선택하던..
선택 자체에 대한 반문을 해 오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왜 굳이 그런 힘든 정신적 소모전을 벌이려 하냐고...
그냥 사회적 현실에 순응하며 살면
아주 간단한 일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또한 난 목소리 높여가며 여성의 권위신장을 부르짖는
페미니스트도 아니다.
하지만... 나처럼 가슴에 불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 있어
순응이란...또는 길들여짐이란..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그것과는
조금은 별개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나에게 현실의 평범함 즉 어떤 상황에 있어서의
매너리즘은 숨쉴 수 없는 고통이며
또 그로 인한 삶의 허무가 너무 크기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시키고자하는 내 안의 쿠테타 내지는
혁명이 필요한 것이다.
운명을 운명으로서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일 수 있겠지만
순응과 개척... 어느 것이든 그에 따른
치명적인 데미지는 있는 것이고 그것을 적당히 조율하며
그 고통을 견뎌 냈을 때...
비로소 내 안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겠지...
그래서 난 춤을 추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연주한다.
(요즈음은 새롭게 의상디자인에 도전중인 것이고...)
내 안에 존재하는 불덩이를 스스로 상처입지 않고
포근하게 감싸안기 위해서...
그리고... 난 오늘도...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해 탱고음악의 선율에
춤을 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