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을 두드리는 손이 떨린다. 실로 얼마만 인지...
세상을 이해하고 내안에 아픔없이 들이기 위해서 글을 시작했지만
어느순간... 그것의 무의미 함을 깨닫고 스스로 놓아버린 글...
내적 정화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방관자적 입장으로 돌아가
흔들리는 감정의 위태로움을 페르소나로 일관하며
그것에 익숙해지기를 간절하게 바랬던 나...
하지만 삶과 세상이 분리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불완전한 인간..그리고 가변적일 수 밖에 없는 감정의 간사함에
끊임없이 나를 찾는 노력없이는 삶도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을터.
단언하건데... 누구나 자신의 감정에 온전히 솔직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세상은 절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공간이며
어떤 식으로든 수 많은 타인과 직간접적으로 부딪히며 살아간다는 전제는 불변이기 때문이다.
쉽게말해 감정이란 타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것이기는 하나
그것을 표현하는 공간의 입체성 즉, 단선적일 수 없는 인간관계의 복잡성이
페르소나 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도덕적 모럴때문이든 확신할 수 없는 감정의 실체에 대한 두려움이든
타인의 감정에 대한 배려이든...
감정에 솔직 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는 이견이 없다.
항상성에서 배재된 감정의 자유로운 기행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아무리 차가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저 자신의 페르소나에 길들여지기를 혹은 타인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불안"이란 내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체 살아가고 있는 것.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라는 류시화 시인의 시가 있다.
물론 이 시를 읽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물들게 하는 이에 대한
사랑시 쯤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난 좀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렇다..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항상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내 안에는
가면을 쓰지 않은 유리처럼 투명한 또 하나의 내가 있다.
현실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앉아 어린아이의 때묻지 않은 감성으로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투명한 내가 내 안에 있어도 그것을 밖으로 들어내 놓을 수 없고
투명한 나와 진실하게 눈 맞출 수 없다.
다가갈 수 없는 내 안의 나를 향한 그리움...
나는 감히 그것을 외로움의 본질이라 말하고 싶다.
애인이 있어도 외롭고...
아내 혹은 남편이 있어도 외롭고...
가족이 그리고 친구가 있어도 외롭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과의 공감과 소통을 꿈꾼다.
가식없는 대화... 솔직한 감정을 여과없이 말 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을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은 욕구...
그러나 페르소나 없이 세상과 마주할 수 없기에 인간은 늘 외로울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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