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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 생각

나비효과 - 낯선 길을 떠나는 명분

by 오하라74 2011. 8. 29.

 

"한 방울의 물감이 대야 전체에 골고루 퍼지듯이,

 지구상 한쪽에서 벌어진 사건은 지구상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이미 알려진 임진왜란의 여러 이유중 하나가

서유럽인들의 식성때문이라는 네이버 기사가 내 눈을 사로 잡았다.

기존에 알고 있던 몇몇가지 이유, 예를 들어

41년간 단절된 중일무역관계의 재개라던지,

여몽연합군의 침공에 복수하기 위해서라던지

센코쿠통일 이후의 내부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방편등등이

지금까지 내가 알고있었던 임란의 이유였는데

뜬금없이 임진왜란을 포르투갈이 부추겼다는 머릿기사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남의 집 담을 넘어야 할 사정이 있다고 하여,

 누구나 다 강도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도가 되려면 체력도 있어야 하고 무기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웃나라 일본이 임진왜란을 발발 할 수 있었던 용기는

바로 우리보다 앞선 무기 즉 "조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과연 이 조총은 어디서 전해진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쫒아가다보면 어느덧

포루투칼이라는 머나먼 서유럽 나라가 연결된다.

 

서기 10세기 이후, 그러니까 고려시대 이후에는

유럽의 왕족이나 귀족들 사이에서는

동방의 향료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이중에서도 후추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당시의 향료무역을 지배한 쪽은 이슬람과 이탈리아.

절대적으로 무역의 지리적 우위를 가진자들의 몫이였다.

이슬람 상인들은 인도양을 통해 동남아로 가서 향료를 구매했고,

이탈리아 상인들은 레반트(터키,중동,이집트)에서

이슬람 상인들을 통해 향료를 구매해 유럽 각지에 배급했다.

 

당시 해상을 장악하고 있던 포르투갈, 스페인과 같은 나라의 상인들은

이런 무역구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중동을 중심축으로 유라시아대륙의 동서를 잇는 세계무역에서

서유럽은 지리적으로 변방일 수 밖에 없었고

중동 혹은 동남아시아는 그 접근성이 매우 열악했다.

 

일본 또한 유라시아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섬나라었기에

비단길을 매개로 전개되는 중동과 동아시아의 문화교류에

참여하기란 이만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16세기 이전엔 서유럽과 일본은

세계무역의 3류에 불과했던 것이다.

 

에드워드 카아는 <역사란 무엇인가>란 저서에서

"한 시대의 문명 발달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집단은

 다음 시대에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다" 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로 이전 시대의 전통과 이해관계 및 이념에 너무 깊이 젖어

다음 시대의 요구나 조건을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 다시 뒤집어 생각하면 기존 체제에 별로 미련이 없는

즉 버릴것이 없는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말.

이들은 가지지 못한 권력과 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서유럽인들도 그러했다.

이탈리아나 이슬람에 가로막혀 동방세계와 직접 무역을

할 수 없었던 서유럽인들은 자체적으로 새로운 루트를 찾아나섰고

그들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아프리카 서해안을 돌아

새로운 항로를 탐색했고 또 다른 일부는 바다의 끝이 있는

대서양 서쪽을 향해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미친 짓거리였지만

그만큼 서유럽인들의 절박함을 읽을 수 있는 단적인 증거기도 하다.

 

1497년,포르투갈 리스본을 출발한 바스코 다가마는

2년 만에 아프리카 해안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고

이에 고무된 포루투갈 인들은 인도양에서 이슬람세력을 축출하고

아프리가 남부 모잠비크에서 말루쿠 제도에 이르는

향료무역 루트를 개척하는 데 성공한다.

 

이런 포르투갈의 의지는 동남아까지 이어졌고

동남아에서 발원하는 태풍이 그들을 일본에까지 옮겨놓았다.

1543년, 태풍에 휩쓸린 포르투갈 선박이

일본 규슈 남쪽의 다네가시마에 표착하게 됐고

이때 전해진 조총 2자루가 임진왜란의 불씨를 당겼던 것.

 

난 이런 어마어마한 역사의 한켠에서

인간의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모험심에 경외심 마저 느껴진다.

지금처럼 항공이 발달했던 것도 아니고

정확한 항해지도 또한 있지 않았던 그 먼 15~16세기...

현재를 사는 지금으로서도 상당한 거리가 아닐 수 없는...

하지만 그들은 해냈고 머나먼 나라의 전쟁을 야기시켰다.

역사적 나비효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사례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의미를 두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호기심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며

나비효과에 대한 그 어마어마한 파장과 힘에 대한 것도 아닌

에드워드 카아의 말이다.

현재 기득권을 가진 계층은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되기 힘들다는...

이는 항시 변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안되는,

그리고 현재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미련으로

미래를 준비함에 수동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중요한 교훈.

 

이는 국가나 단체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내가 항시 새로운 길을 떠나고자하는

욕망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관습과 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코 새로운 시대를 볼 수 없으며 준비할 수 없음에 대한 경계.

그것이 나로 하여금 끝없는 불안한 항해를 하게 하는 이유다.

그러나 그 이유가 단지 권력이나 힘을 위해서가 아닌,

세대와 세대의 간극을 줄여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며

또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한 준비라는 것.

 

늘 낯선 길을 찾아 떠나고자 하는 명분을 뚜렸하게

인지하지 못했으나 이제서야 분명해진 것 같다.

물론 먼 여행일 수록 돌아오는 길 역시 힘들고 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워 떠나지 못한다면 변화할 수 없고

더 나은 길로의 방안을 모색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오늘도 낯선 길을 향한 불안한 항해를 기획하고 꿈꾼다.

그것이 글이 되었던, 여행이 되었던...벙법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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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며 도전하는 자의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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